부산경남권 공대생의 우울

“취업률 저하에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대학들은 조정 대상 1순위로 조선 관련 학과를 거론하고 있다. 조선해양공학과를 둔 전국의 42개 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취업이 화두다 보니 당장 내년도 신입생 지원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커졌다. 조선 관련 학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해왔던 고3 수험생들도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다른 학과로 진로를 바꾸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게 일선 고교 진학 담당 교사의 설명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부산대 조선해양과 는 장기적으로 조선산업의 환경 변화에 따라 정원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공대 버팀목 조선학과 흔들리자 ‘인재 엑소더스’ 위기감: 부산지역 과거 취업률 90~96%)

“경남지역 대학의 조선 관련 학과들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조선 관련 업체로의 취업 문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내년 신입생을 받지 않는, 사실상 폐과를 결정한 곳도 있다.”(입학만 하면 취업 옛말…대학 조선학과 깊은 시름)

[포커스-조선업 몰락]산업문제와 노동문제 동시에 풀어야 한다

구조조정과 이직으로 깨진 공동체

1960~80년대까지 부산경남권에서 태어나 기술로 밥벌어 먹겠다고 했던 이들에게는 ‘취업’이 걱정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1980년대까지 공고 기계과, 조선과를 졸업한 스무살들이 대거 조선소로 입사했다. 병역특례 혜택을 줬고, 설계원으로 입사한 경우 1990년대에 대거 사무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또한 대거 입사한 인원들이 부산대학교를 위시한 지역 공대의 조선공학과, 기계공학과, 전기-전자공학과 출신 대졸자들이었다. 이들은 산업이 확장기였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엔지니어 특채나 공채를 통해 대거 입사할 수 있었다. 수도권 인문사회계열 + 상경계열 대학생들이 ‘TOEIC 900점’과 ‘TOEIC SPEAKING’을 따내고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대기업에 진입할 수 있을 때, 부산-경남권의 졸업예정자들은 ‘TOEIC 500’을 상회하는 점수와 전공 공부을 ‘펑크’ 내지 않을 수준으로 공부했다는 것만 인증한다면 생산관리자 정도는 손쉽게 입사할 수 있었다. 전공지식과 영어 점수를 좀 더 상회할 경우 QM이나 설계 엔지니어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90% 이상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출신들로 채워지는 10%의 문과 출신 신입사원들에게, 부산경남권은 낯설고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들이었다. “내가 이런 사람들과 같이 근무하려고 이렇게 공부했나”하는 푸념마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부산경남권 공대 출신들은 “와, 저 사람들이 동기야?”하고 대단해 하거나 수도권 ‘대도시’ 출신들의 ‘젠체’에 대해 빈정 대기도 한다. 물론 이런 감정적 이질감은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완화된다. (부서 배치 이후에는 다시 동문회를 통해 다른 가치 지향을 주입받는다.)

조선산업계의 입장에서 볼 때 부산경남권 공대 출신들은 안정적으로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 완충판이다. 경영위기나 보통 수도권 근무의 메리트를 제안하는 타사의 스카웃 제의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의 산업 자체가 다 하강으로 치닫고 있고, 임금 반납이나 성과급 미지급 등이 벌어져 벌이가 줄었음에도 이들은 “이 정도면 그냥 다닐랍니다”라고 대답한다. 부산경남권을 벗어나 조선업을 제외한 다른 산업에서 채용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의 H자동차그룹이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조선업처럼 폭넓게 다양한 학교에 문호를 열지 않을 것임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죽으나 사나 조선소 귀신이 되려 한다. (물론 이들 중 자기계발에 열심이고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은 고객사나 선급의 계약직으로 이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포지션은 고연봉이되 고용상태가 불안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지역 내에서 조선소에 대해 ‘안정적’인 직장이라 생각하고 입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에 대한 서울 소재 대학 출신 엔지니어들과 사무직들의 불만이 높은 가운데, 묵묵히 일을 끝까지 매듭짓고 있는 이들이 부산경남권 공대출신 직원들임은 분명하다. 업무과부하가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채용 자체가 힘들어진 가운데, 애초에 조선3사를 ‘돈 많이 주는 대기업 중 하나one of them’으로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큰 데미지가 아니지만, ‘꼭 가야 하는 대기업 중 하나’로 생각했던 부산경남권 공대생 모두에게는 우울함이 그치지 않는 중이다. 어쩌면 같은 순간 회사들은 가장 충성할 핵심인력을 모시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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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을 밀어내는 산업도시

“대학을 선택할 때 고향을 떠나는 결단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른바 ’18세의 결단’이지요. 도쿄나 태어난 마을이 아닌 곳에 가서 인생의 한때를 보내며 공부하는 것은 중요한 경험입니다. 다만 어디에서 공부를 했더라도 직업을 구할 때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22세의 결단’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향 지역에 일자리가 있어야 합니다.“(마스다 히로야, [지방소멸], 191)

“좀 더 간편한 지표로서 인구의 재생산을 중심적으로 담당하는 ’20~39세 여성 인구’ 자체를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출생아의 95퍼센트가 20~39세 여성에게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20~39세라는 ‘젊은 여성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한 인구의 재생산력은 계속 저하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총인구의 감소라는 거대한 흐름도 멈출 수 없다.“(마스다 히로야, [지방소멸], 31)

“최근에는 지방으로 돌아오지 않는 젊은이(특히 여성)가 늘고 있다.”(마스다 히로야, [지방소멸], 67)

“요새는 멀쩡한 직장 다니는 남자와는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해요. 회사들이 공대 애들만 뽑고, 걔네는 특별한 거 없으면 다 현장 발령이니… 근데 거기 가서 어떻게 살아요? 결국 장거리 연애지.”(인터뷰이 K)

[흔들리는 ‘경제 허리’ 중견기업] “지방 인재도 지역 강소기업 취업 기피”

취업난에 지방 향한 2030세대, ‘문제적 음주’ 가능성 커

산업도시는 남자의 이름으로 움직였다. 남자를 뽑았고, 남자가 돈을 벌어 식구를 먹여 살렸고, 남자들끼리 왁자지껄 떠들고 다녔다. 뱃사람들을 모아 배를 짓기 시작한 거제도도 마찬 가지였다. 만취한 남성들끼리 술을 깨려고 카페에 가는 것조차 하나의 문화가 됐다.

남초도시라고 했지만 남자만 섬에 살았던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116:100 정도로 53%:47% 정도의 성비를 유지하면서 남성과 여성들이 고루 살았다. 다만 생계부양자의 권한을 높은 임금이 남성에게 선사 했을 따름이었다. [현대 가족 이야기]에 나오듯, 남자는 조선소(대공장)에 출근해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맡았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시부모를 모시고 온 경우도 많아 돌봄노동도 맡은 경우가 많았다. 남성 공동체와 여성 공동체의 회로는 다르게 돌면서 호황기를 받쳐 왔다.

이번 글은 비혼자 여성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위에서 마스다 히로야의 책을 인용한 것처럼, 일본의 지방 도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은 20~30대 여성으로 인해 궤멸적 타격을 받았다. 여성들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출신 도시가 어디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 1위이자 글로벌 선두권을 달리는 도요타 자동차가 있는 도요타 시에도 여성들은 잘 진입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대도시를 버릴 계획이 없다. 남초도시이자 아저씨들의 산업도시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

거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동 이주와 결혼 이주를 대표할 수 있는 20~39세 인구 통계는 더딘 여성 유입 상황을 드러낸다.

위의 누적그래프는 남성의 유입과 여성의 유입을 표현한다. 2000년만 해도 대학입학 때문에 대도시로 나가는 스무살들을 제외하면 모든 20~35세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의 유입이 남성보다 많았다. 하지만 5년 단위로 볼 때 여성의 유입은 점점 줄어 남성유입을 크게 하회했다. 물론 S중공업과 D조선이 공채인원을 늘려 뽑아 급작스런 성비가 깨졌다고 볼 수 있지만,  30대 초반(30~34)의 성비가 깨짐을 설명하긴 어렵다. 또한 여성 인력 채용 저조도 따져볼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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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적나라하게 상황을 드러내는 그래프다. 해석하자면 1990년대 거제도에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진입했지만, 이들은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여성 유입을 창출했다. 151.6이던 1990년 20-24세 성비가 1995년 25~30세 114로 떨어짐이 이를 보여준다. “거제도 가서 돈 열심히 벌면 가족 부양하고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다”는 지역의 속설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의 경우를 보자면 상황이 악화되었음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기준 20-24세 성비는 162.48, 추적을 위해서 살펴볼 수 있는 2005년의 성비는 150을 조금 상회한다. 하지만 2010년 25-29세 성비는 여전히 140을 훨씬 넘고, 그보다 먼저 진입한 2000년의 20-24세, 즉 2010년의 30-34세 성비 역시 140에서 131.6으로 거의 개선되지 않는다.

거제도 유출입 성비

젊은 여성은 거제도에 가서 살 생각이 없어지는 중이다

쉽게 말해 젊은 남성은 모여드는데, 젊은 여성은 거제도에 가서 살 생각이 없다.  미스 매칭으로 결국 남성은 장거리 연애 / 주말 부부를 강제 받거나, 결혼시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심지어 임금 반납과 ‘고정성’으로 나오던 성과상여금이 사라진 2016년부터는 결혼시장에서도 3D 업종 / 도회적이지 않은 외모 / 소득의 장점 상실로 더 악조건에 놓이게 됐다. 공대생으로 지방근무를 더욱 꺼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유를 정책입안자나, 원주민이나, 기업이나 모두 모른다는 것이다. 그 사이 잘 키운 딸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부산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는 꿈을 꾸며, 거제도로 돌아오지 않고 대도시에서 일하고 생활하길 소망하게 된다. 누군가는 보육시설이 없다고, 누군가는 돈이 없다고, 누군가는 직업이 없다며 공채 채용에서 여성할당제를 시행하면 된다고 한다. 모두다 틀리지 않았지만 모두다 맞지도 않다. (그 사이 또 누군가는 꼭 아파트와 문화 시설 없으면 살지 못한다는 여자들을 규탄한다.)

인프라를 먼저 보자면, ‘삶의 조건’이 여전히 못 따라 간다. 마스다 히로야의 말처럼 “지방 도시의 경우 (..) ‘시가지’의 기능을 재정비하고 시가지와 주변부를 연결하는 지역 공공 교통 네트워크를 정비하는 사업을 함께 추진할 것이 요구된다. (..) 의료∙복지, 쇼핑, 상업, 교통에 관한 지리 공간 정보를 최대한 공개 데이터화하고 GIS(지리 정보 시스템)상에서 ‘가시화’해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대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의료∙복지, 쇼핑, 상업, 교통 모두가 필요하다.  ‘사치’일 수 있지만 이미 젊은 세대에게는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더라도 ‘네트워크’에서는 off되지 않아야 ‘사회적 삶’을 살 수 있는 시대다. 근데 그런 인프라가 없다. 당연히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치’가 된다. D그룹 시절부터 악명이 높았던 병원이 내는 생색을 믿을 수 없다. 당연히 아이를 키우고 삶의 질을 높일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D그룹과 D초등학교의 호시절은 끝났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는 여전히 일터가 문제다. 여성 생산관리자를 경원시 하는 현장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극복됐고, 입지전적인 공채 출신 여성 과장들은 제 몫 이상을 해내면서 아이까지 키워내고 있다. D사와 S중공업의 조직은 늘 일정비율 여성 공채 직원을 뽑았다. 하지만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은 P정부 이후 외려 약해진바 있고, 실제 공채에서 여성 비율은 20%를 상회하다 10% 가량으로 줄었다. 정부가 구태여 요구하지 않으면 남자의 조직은 한결같이 여성을 동료로 받아주지 않아온 것이 역사다. 어느 새 ‘남성 직장’으로 다시 일터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직업선택의 다양성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소를 제외하면 교사/약사/의사/변호사/간호사/은행직원을 제외하면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제조업 / 서비스업 정규직 직업이 제한적이다. 조선소에 공채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조선업 관련 업종에서 커리어 패스가 보장되지 않은 ‘한정된 기간’에 제약돼 고용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도시는 그 자체로 여성의 방출요인이다. 물론 ‘소비’ 그 자체로 유혹하던 시절의 부도 사라졌다. 외벌이가 얼마나 취약한지는 거제도 스스로 증명하는 중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보조적’인데 구태여 고향을 버리고 내려올 이유가 있는가? 아니, 고향이라도 낯선 이곳을 꼭 가서 살 필요가 있나?

마지막으로 ‘도시의 익명성’이 왜 필요한지를 여전히 도시가 이해를 못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작업복을 통하여 신분을 식별하면서, 동시에 유대감을 느끼고, 공동체로 스스로를 인지하는 문화는 젊은 여성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행실’에 대한 남자 어른의 발언이 쉬운 곳에서 여성의 운신은 극도로 제약되며, 부지불식간에 부모의 지인에게, 애인의 지인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우리 식구”라는 감각이 만들어내는 제약, 그것이 ‘딸’의 귀향을 막고 있고, 이미 도시에서 배운 젊은 여성의 신규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젊은 여성이 오지 않는 도시, 이미 재생산의 위기이며 생산의 위기임이 자료를 통해 드러난다. 근데 이 도시는 과연 젊은 여성을 온전한 주체로서 원하는가? 원치 않은 이상 인구감소와 연쇄붕괴는 일본의 경우로 과학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산업도시 하나가 중요치 않은 상황이다.

(※ 인구통계 검토 내용은 추후 보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 소멸6점
마스다 히로야 지음, 김정환 옮김/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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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리(발언권과 협상권으로 본 조선3사의 조직문화)

현대차 ‘리더십 변화’로 조직문화 확 바꾼다…10계명 배포

[이재용의 뉴 삼성] ⑨ “권위를 집어 던져라. 혁신이 박동하게 하라”…이재용의 조직 문화 혁신

대우인터 직원들은 포스코의 전 사장 해임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전 사장은 전통 ‘대우맨’이다. 1977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대우조선공업을 거쳐 대우인터에 자리를 잡고 지난 17년간 상사업무를 해왔다. 대우그룹 해체의 아픔을 함께 겪은 직원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선배’이기도 하다.

포스코와 대우인터의 갈등 구도는 포스코가 2010년 대우인터를 인수한 이후부터 꾸준히 불거져왔다. 포스코는 철강업의 특성상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강한 편. 반면 대우인터는 ‘세계경영’의 첨병역할을 한 상사답게 개인의 역량이나 판단을 중요하게 보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다.  ‘조용한 가족’ 포스코·대우인터, 갈등 표면화

대기업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와 달리, 각 회사는 서로 다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애초에 채용부터 조직문화와 어울리는 구직자를 채용하고, 내부의 조직문화가 그런 특징을 훨씬 더 강화한다. ‘현대맨’, ‘삼성맨’, ‘대우맨’이 그렇게 태어난다. 현대는 군대문화, 삼성은 관리문화, 대우는 상사문화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측면이 있다.

1. “대리는 말할 수 있는가? Can Assistant Managers Speak?”

H중공업∙S중공업∙D조선해양 직원들이 만나는 순간이나, 조선3사 모두를 상대하는 기자재업체가 전하는 이야기는 나름의 진실을 포함하곤 한다. 느낀 대로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직무에 따라, 직군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한다.)  이 글의 주인공은 바로 ‘대리’다. 대리가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회사의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H중공업과 D조선해양 직원이 회의를 연다. 각 회사에서 부장 1, 과장1, 대리1, 사원1명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고 가정하자. 먼저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회의 회의 10분 전,  현대중공업 대리와 사원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컴퓨터를 켜고, 커피 등 다과류를 가지런히 조그만 그릇에 셋팅한다. 조금 지나 과장이 도착하고, 부장이 나타난다. 사원과 대리는 준비한 화면을 띄워놓고 과장에게 ‘키’를 넘긴다.

회의가 시작되면, 발언권은 부장에게만 있다. 모든 질문과 답변과 논의를 부장이 담당한다. 모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장은 조용히 자료 화면을 넘기거나 주요 내용을 속기한다. 사원과 대리는 얼어있는 채 열심히 기록하지만, 실제 회의에서의 기능은 회의 셋팅에 한정된다.

다음 날 울산에서 거제로 넘어와 회의가 열린다. 회의 5분전, 어슬렁 어슬렁 대리와 사원이 나타나서 컴퓨터를 켠다. 대리는 자료화면을 띄워놓고 재빠르게 넘기면서 내용을 숙지한다. 사원은 대리와 농담을 나누면서 다과를 풀어둔다. 조금 지나 과장과 부장이 농담을 하며 함께 들어온다.

회의가 시작되면, 발언권은 대리에게 있다. 부장은 회의를 시작하며 후배들을 소개한다. “우리 O대리가 잘해요. 자, OXX야 시작해 볼까?” 자료를 대리가 읽기 시작하고, 논의 역시 대리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간다. 과장은 이따금 대리를 서포트 하기 위해 조금 더 전문적인 조언을 보탠다. 부장은 분위기가 어색해질 경우 추임새를 넣으며 리프레시 시키고, 후배들이 이렇게 잘하고 잘 안다며 칭찬을 보탠다. 물론 회의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최종적으로 부장이 진다. 하지만 대리는 충분한 권한을 받고 ‘까불 수 있는’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진격의 대리”

S중공업 사람을 만날 경우 D조선해양과 큰 차이 없이 친절하고 일견 자유로워 보이지만,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는 능글맞게 넘어가거나 넘어서기 힘든 선을 긋는다는 점을 차이로 종종 말한다. 자료 공유를 하자고 S중공업에서 제안해 조선3사 실무자들이 모이면, H중공업과 D조선해양 직원들이 실무자료를 꼼꼼히 챙겨서 가져오면 S중공업은 그 자료만 잘 챙기고, 자기들은 홍보자료 수준의 자료만 가져온다고 소문이 나기도 한다. S에는 구두로 자료 협조 요청 해봐야 소용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내부적인 관리규정이 엄격하기 때문에 실무자 선에서 ‘재량’을 발휘할 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치밀하고 집요하고 꼼꼼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해서 이기적으로 보여 인간미는 떨어지는 과장 정도의 이미지.

2. “대리는 협상할 수 있는가? Can Assistant Managers Negotiate?”

조선 3사의 조직문화 차이는 거래하는 제작업체의 이야기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가령 후판 톤단 가격을 협상하는 상황. 3사는 전혀 다른 대응을 한다. H중공업 조달부 실무자들은 본부장에게 지시 받은 가격표로 무조건 맞추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번에 그 가격에 안 주면 거래를 끊겠다는 협박조의 대응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에 우격다짐으로 가격을 맞춘다.

D조선해양은 모든 것을 담당자가 판단한다. 시장가격을 확인하고, 각 업체들과 담당자들의 오래된 거래관계를 토대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재량껏 가격을 결정한다. 담당자가 사원이든, 대리든, 과장이든 본인이 판단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최종적으로 결재를 올려 담당자가 승인을 받는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맨 땅에 헤딩하면서 경험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과장급에 이르러서는 노련한 조달 담당자가 된다. (물론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다음 기회에 쓰겠다.)

S중공업 이야기는 조금은 싱겁다. D사와 H사가 제시한 가격 테이블을 입수한 뒤, 그 가격을 기준으로 업체와 협상을 한다.

3. “미생의 대리들이 실제 대기업 사무실에 있나?”

서두에 인용한 글에서 “대우인터는 ‘세계경영’의 첨병역할을 한 상사답게 개인의 역량이나 판단을 중요하게 보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구절이 있었다. 가부장적이며 군사문화가 팽배한 한국에서 온전한 ‘자유로운’ 혹은 ‘리버럴한’ 문화는 대기업에서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한 ‘지레짐작’은 드라마가 된 웹툰 [미생]에 대해서 ‘판타지’라고 지적하는 태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미생]의 원재료가 되었던 대우그룹에는 분명한 담당자들의 ‘역량과 판단을 중요하게 보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고, 그것들이 문화 안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생의 ‘대리’들처럼 각각 특성있는 담당자들이 실무를 꿰차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D사 사무직/엔지니어들이 주로 보이는 리버럴한 문화는 다른 한 편 회사 내부에서도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고등학교나 전문대를 졸업하여 생산관리자가 된 이들은 상사의 ‘엘리트주의’와 엔지니어 문화가 만들어냈던 자신감에서 출발한 ‘리버럴함’에 대해 ‘재수없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늘 “지 맘대로 해놓고 똥은 누가 치우나?” 하는 생산관리자들의 불만이 높은 것은 비단 업무의 부하 뿐 아니라 태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물론 같은 생산관리자들 간에서도 학벌과 학력에 따른 묘한 갈등이 존재한다). 어리거나 직급이 안 되는 이들의 ‘자신감’에 대해 전통적인 보수적 태도가 마주할 때의 긴장감. 하지만 서로는 서로 다른 채널 혹은 사일로silo 안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인지는 되지만 전면적으로 대두되지 않는다. ‘소통’을 강조한다고 순식간에 풀릴 문제도 아니게 된다. 결국 잠재된 시한폭탄이 되거나 이미 드러난 경영위기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돌아가자면, 조직문화의 특징은 비단 회사들이 선포하는 ‘핵심가치’나 ‘경영이념’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조직문화를 판단하기 위해서 주목할 것은 말과 글로 ‘재현된 것’을 넘어 ‘행동양식’에 대해서, 즉 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에 대해서 살펴야 하는 것이다. 조선3사가 닥치게 된 어려움에 대해서 말할 때도 역시나 ‘조직문화’를 빼놓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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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의 하강과 대응에 대한 노트 (2015/4/5)

from flyhendrixfly

정책을 만지는 사람과 이해당사자의 접근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냥 편들기 말고 정책을 만지는 사람의 머리씀을 발견할 수가 없다.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망하거나 해고하거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이것이 모두 자본가들의 계략이라며 분개하는 태도는 노조 집행부가 부르르 할 때야 도움이 되겠지만 학자가 할 일은 아니다. 다른 산업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해주는 게 기본이 아닌가 한다. 조선업의 경우 고객이 파업 때문에 발주를 안 낸다고 했을 때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수주할 때 CEO가 노조위원장을 대동하는 것도 노사관계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계급투쟁이 세일즈 앞에서 무력화될 때 뭘 할 수 있나?

장기적으로 조선업은 하강이고 더 이상 건조-생산을 한반도에서 운용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전세계에 있는 모든 조선업 생산직 노동자가 산별파업을 하지 않는 이상 임금을 맞출 순 없다. 수빅은 조선소의 미래다. 이럴 때 민주노조운동은 뭘 할 수 있나? 결국 테크닙처럼 해양플랜트 설계나 선박 설계를 만들어 팔아먹는 것, 품질관리나 드릴링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조선업의 미래인데 거기에 생산직 자리는 없다. 10만 명 넘게 고용 하던 정규직을 어찌할 건가? 없어지는 직업관점으로 봐야하는데 논의가 많이 늦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자리에 테마파크를 짓고 수주가 없어 놀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용접을 맡기자는 이야기가 잠깐 나왔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독일처럼 하이테크 제조업으로 갈 수 없는 분야 생산직들은 그런 고민에 계속 빠지게 될 거다. 지금 놀때가 아니다. 한국에서 현재 임금체제를 유지하면서 생산직 노동자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안 되는 부문의 노동자들은 덴마크처럼 전직지원을 통해 얼른 안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물론 이게 제조업 접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R&D 투자도 어떤 직종이 사라지고 흥할 건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면서 해야 하는데. 중동가서 일자리를 따내자는 수준으로 이야기나 하고 있으면, 국내 산업의 중장기 전망 같은 건 아무 관심 없다는 말로 들려 암울하기 짝이 없다. 당장 한국의 대부분 제조업이 진화의 덫에 걸리고 인건비와 기술력 두 가지에 샌드위치가 된 것도 사실이다. 샌드위치 위기론이 2000년대 중반엔 그나마 전망이었다면 지금은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전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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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연애 in 조선소

 

 A는 안절부절이다. 셔틀버스 1호차 3번, 버스가 서울역을 지나 한남동, 서초IC, 만남의 광장을 거쳐 죽전 신갈을 지나도록 스마트폰 액정만 만지작 거린다. 늘 D빌딩 앞에서 손을 한참이고 잡아주던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혼자 앉는 자리, 3의 배수인데 통화조차 할 수 없다니. (양승훈, 셔틀버스 1호차 3번, 미간행)

금요일 5시, 거제도에 위치한 양대 조선소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울산 등으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미리 옷을 갈아입고 느긋하게 순환버스를 타고 셔틀버스를 타는 사람이 있고, 공정에 쫓겨 작업복도 갈아입지 못한채 버스로 올라타는 사람도 있다.

셔틀버스 운영방식에는 회사별로 차이가 있다. S사의 경우 버스 대수를 정해두고 지원자가 좌석 숫자를 넘을 경우 뽑기를 진행한다. 만약 떨어질 경우 고현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직접 표를 구해서 이동해야 한다. 대신 뽑혔을 경우 비용은 없다. D사의 경우 셔틀버스 신청자 숫자만큼 버스를 수배해서 배차한다. 대신 직접 우등버스를 예매하는 비용의 절반 남짓을 급여에서 차감한다. D사의 경우 매주 10대가 넘는 우등버스가 서울로 움직이고, 20대가 넘는 버스가 부산을 왕복한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일요일 저녁에 복귀하는 일정. 한 때 부산으로 움직이는 일일 통근버스를 기안했으나 인구 감소로 인한 세원 축소를 염려한 거제시의 반대로 백지화 됐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버스를 전세 내서 부산에서 출퇴근 하는 직원들도 존재한다.)

셔틀버스의 주인공은 서울소재 대학 출신 대졸공채 비혼자 직원들이다. 5일간 일하다가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기러기 아빠(주로 과장~부장)들이 있지만 이들은 숫자와 영향력 모두에서 소수다. 기러기 아빠들의 비혼자들의 주말에 대한 인식과 라이프 스타일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결혼과 수도권 출신들의 연결성에 대한 갈증이 있다.

몇년 전까지 수도권 출신 비혼자들은 많은 경우 거제시나 부산 같이 근처에서 ‘짝’을 찾았다. 한국 나이 27살에 취업해 30세가 채 되지 않아 결혼할 수 있던 배경에는, 외벌이로 생계를 꾸리는 것이 가능했던 사회경제적 맥락이 있었다. 어차피 걷어 먹일 수 있다는 전제에서 누구를 만나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생애계획에 대한 전망은 근처에서 결혼상대를 찾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2007-8년을 경유하면서 이런 전망은 수정되기 시작한다. 우선 서울 소재 대학 출신들의 대거 유입이 발생했다. 조선업 호황기를 거치면서 서울대 조선공학과 외에도 서울 소재 주요 공대의 엘리트 자원을 고임금과 해외연수 등 혜택을 통하여 확보할 수 있게 된 조선사들은, 당시부터 미래 먹거리로 언급되던 ‘해양 플랜트’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설계원들 충원하기 시작했다. 기계공학과와 전자공학과에서 시스템 설계 / 프로세스 설계를 할 수 있는 인원을 확보하는 것이 FPSO를 비롯, 드릴십, 리그, FSRU, Jack-up 등의 기본설계를 해낼 수 있는 전제조건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수 인력이 필요했고, 필연적으로 서울 출신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매기수 400~500명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서울 소재 대학 출신들이 거제와 울산으로 향했다.

20~30대의 임계인원(critical mass)을 넘겨버린 서울 출신들은 결혼에 대한 인식과 패턴도 바꿨다. 이들은 기존의 선배처럼 여성을 소개 받아 자연스럽게 조선소에 정착하지 않았다. 2005년부터 주5일제가 정착됐고 그 해 12월 개통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서울과 거제도간 거리를 4시간 반으로 좁혀, 토요일 종일과 일요일 반나절을 서울에서 보내는 게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입사한 서울 소재 대학 출신 대졸 공채 사원 중 많은 경우가 셔틀버스를 정기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셔틀버스를 통해 매주 왕복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연애다. 조선3사에 입사하는 인원들은 대학을 다니는 시점에도 우수한 공학도이거나 우수한 상경계/인문사회학도였고, 그들의 데이트 상대 역시 어느 정도의 소득과 직업적 전망을 가진 이였으리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거제도에서는 외벌이가 일상적이었지만, 서울에서는 맞벌이가 일상적이었고, 서울과의 접점을 줄이고 싶지 않던 서울소재 대학 출신 사이에서는 기존에 만나던 혹은 새로 서울에서 만난 상대와 결혼하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매주 서울을 왕복하는 직원이 탄생했다. 스마트폰이 발전하지 않던 시기에도 그들은 매주 친구나, 동기, 선후배를 주말마다 만나며 서울의 소식을 조선소에 전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이성을 만나며 거제도에서 이미 결혼을 전제한 채 모두에게 노출된 채 진행하는 연애를 ‘프라이버시 없는 연애’라며 평가절하 했다.

서울에서 거제도로 내려오는 버스가 밀집해 있는 강북의 D빌딩과 강남의 J역 앞. 매주말이면 입영열차를 기다리는 연인의 모습이 연출된다.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조선소 직원과, 상대를 보내기 싫어하며 애태우는 연인의 모습. 물론 여기에도 연애의 ‘연차’가 영향을 미친다.  “100일 안에는 매주 배웅하고, 100일이 넘으면 만나서 헤어져서 혼자 오고, 1년이 지나면 아예 일요일에는 혼자 지내다가 내려온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하지만, 실제로 한결같이 배웅을 오는 연인들도 많은 편이다. 주말에 가족들과 지내는 ‘사역’을 하러 간다는 시니어(차장~부장)들은 내려가기 싫고, 올라가기만 기다리는 주니어들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물론 야드에서만 근무했던 사람보다는 좀 더 이해하는 편이긴 하다.)

일요일 밤 11시, 독신자 숙소 앞에서는 연인과 통화하는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2인 1실이기 때문에 방에서 편하게 통화하지 못하는 많은 직원들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전화로 연인을 위로하며 한주 후 만날 날을 기약한다. 물론 주말 데이트 하는 동안 다툼이 있었던 경우,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는 시간도 바로 이 때다. “그게 아니라~” “내 말 좀 들어봐” “만나서 이야기하자”라는 통화 내용과 함께 한숨과 담배연기가 오락가락한다. 아직 연애를 잘 ‘관리manage’하지 못하는 젊은 사원들은 입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거리 연애에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론 오래 연애를 하다가 입사한 경우, 결혼에 성공하고 ‘장거리 부부’로 전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장거리 연애를 택하는 직원들의 결혼이 늦어지는 것도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장거리 부부’를 꺼리기도 하지만, 수도권의 높은 부동산 비용이 이슈이기도 하다. 장거리 ‘연애’를 장거리 ‘부부’ 관계로 전환했던 선배들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이따금 전수하기도 한다. (처가살이도 괜찮다고 남자 직원들에게 권하거나, 장거리 부부 대신 거제도에 정착시키기 하는 법 등을 이따금 귀띰한다. 물론 주니어들은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장거리 연애를 하는 직원 모두는 일요일에 무사히 연인을 재우고, 주중을 무사히 넘겨 다시금 연인의 품에 안기기를 기대하면서 한 주를 보낸다.

2015년의 조선업 위기의 시작 이후 고학력 엔지니어들의 이탈이 급격히 시작되는 것에도 장거리 연애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고학력 엔지니어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울소재 대학 출신들에게 연봉 삭감과 회사의 평가절하, 서울 사무소 인원의 현장 배치는 큰 압박이 됐다. 서울로 발령 나면 결혼하겠다고 연인에게 한 약속이 물거품이 됐고, 동기들이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잦은 헤어지는 것을 소식으로 들었던 서울사무소 직원들은 거제도 배치에 아연실색하여 헐레벌떡 이직 면접을 보러 다녔다.

회사는 속수무책이다. 알면서도 인사면담과 팀장들의 설득을 통해 현장 배치를 종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애초에 거제에서 근무하는 게 당연했던 이들에게 서울출신들의 ‘서울부심’과 장거리연애는 낯설고 이질감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출신들에게 이것들은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일본 조선업은 시골로 가기 싫어하는 도쿄대학교 엔지니어들의 이탈로 망했다. 한국 조선업의 미래 역시 우수한 엔지니어 확보에 달렸다. ‘속수무책’의 상황은 개선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하이퍼 루프라도 쏴서 매일 직원들을 서울에 있는 연인들의 품에 보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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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의 노무관리(어느 노무관리자의 경우)

[거제르포]⑥기자수첩·’목요일 오후 4시의 포커판’…대우조선 노동 단체 사무실

2015년 11월 근무시간에 사외에 있는 노동단체(제조직) 사무실에서 포커를 치던 생산직 노동자들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당시 르포를 송고했던 기자는 ‘귀족노조’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살폈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모럴 헤저드에 빠진 대기업 정규직 귀족노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공분을 유도하기.

따질 쟁점은 많다. 일단 높은 임금의 문제에 대해서는 낮은 기본급과 높은 특근비 비중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점을 여러 언론과 연구를 통해 증명한 적이 있다. 쉽게 말해 주말과 ‘저녁이 있는 삶’을 반납하면서 만든 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임금을 많이 수령했던 것은 사실이다.

잘 다뤄지지 않는 것은 ‘귀족노조’를 누가 어떻게 만들었냐는 문제다. 과연 노동자들의 이기심이 이런 근로윤리(workmanship)의 가장 큰 요인일까? 이런 쟁점을 따질 때 노동자들의 행태만 살피는 것은 평면적이다. 통상 춘투(임금-단체협상) 시기에  경영기획∙경영관리∙인사 등이 사측을 구성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자주 간과되는 것은 춘투라는 특정 국면을 떠나 일상적으로 노동자들과 접촉하는 노무담당자들의 존재다. 노무관리자 A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A는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와 조선소 대졸공채로 입사했다. 그가 입사했던 2000년대 중후반은 조선업의 호황이 절정이던 시기로 지방근무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많던 시절이다. 채용인원은 적었고 경쟁은 치열했다. A는 인사팀으로 지원했고, 합격한 후 신입사원 해외연수를 받고 인사팀 소속의 노무담당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부서배치후 처음 맞닥뜨린 상황은 점심 신고식이었다. 그의 파트장과 선임 몇명은 근처 횟집으로 가서 매운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 맥주 잔에 소주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원래 주량이 소주 한 잔 수준이었던 그는 따라주는 잔을 넙죽 받아먹고 기절했고, 부서원들은 술이 약한 그를 더욱 강하게 ‘트레이닝’ 시킨다고 했다.

A가 맡은 일은 한 팀에 소속된 직영(본사 정규직) 생산직  500명 가량의 노무관리를 하는 일이었다. 생산직 최소 단위인 한 ‘반’을 구성하는 인원은 통한 8~16명. 반은 또 3개가 모여 ‘직’을 구성한다. 한 부서에는 통상 3개 정도의 직이 있고, 한 노무담당자가 맡아야 하는 단위는 3~5개의 부서로 구성된 담당이었다. 노무관리자의 연간 목표는 간단했다. 대의원 100% 확보, 위원장 선거에서 ‘합리적 노사관계’를 표방하는 정파의 당선. 술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던 A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된 부서의 연간 사업계획을 토로하는 자리에서 본인은 경영학의 인사조직론을 통해 배웠던 지식을 통해 ‘다른 방식’의 노무관리를 수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가 처음에 취했던 방식은 자신의 조직원들 각각의 가정에 밀착하는 것이었다. 노동자 아이들의 나이를 파악해 선물을 보내고, 아내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식으로. 때로는 조금 큰 10대들의 공부를 봐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큰 성과는 없었다. 당장 대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각 부서에 할당된 대의원 숫자 모두를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자기 식으로 해보겠다는 신념으로 ‘부드러운’ 방식의 접근을 멈추지 않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회사가 지지하지 않는 정파(민주노총 현장파)의 대의원들이 대거 당선됐고 연말 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A는 태도부터 바꿔야 했다. 술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한번에 수십명(반 또는 직)의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량을 늘리기 위해 매번 술자리 전과 사이사이, 마치고 나서 계속 술깨는 약을 챙겨가면서 먹기 시작했다. 술을 티 안나게 버리는 연습을 줄기차게 했다. 어느 날부터는 체질적으로 마실 수 없다던 술도 줄곧 받아 마실 수 있게 됐다. 술 외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월급외로 나오는 약간의 ‘활동비’는 노무활동을 위해 지급 됐지만 실제로 술값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월급을 집에 갖다 준 적이 없다는 부장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는 곳이 노무부서였다.

밤에 술로 조직원을 달래는 일 외에, 낮에도 해야할 일이 있었다. 조직원 고충을 ‘빠른 경로로fast-track’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통상 생산부서의 관리자들이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들, 이따금은 규정 위반과 약간의 편의를 넘나드는 개인적 청탁마저 노조 대의원들을 통해서 노무관리자에게 전달되었다. 교섭 시즌(춘투)이 되면 어떤 꼬투리 하나도 쟁의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특별하게 위반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청탁은 승인됐다. 예를 들면 근무중 무단 이탈에 대한 사후 조퇴 승인이나, 반원들과 잘 조화하지 않으려는 반장에 대한 ‘본보기’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회사가 정해놓은 절차는 늘 회피by-pass되기 일쑤였다. 대의원들은 선거철이 되면 본인들이 얼마나 노무담당자와 끈끈한 관계를 통해 많은 ‘편의’를 제공했는지 생색을 냈고 이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곤 했다.

양대 선거철(대의원, 집행부-위원장)이 되면 노무담당자들은 주말을 포함한 주7일 폭음을 했다. A도 예외는 없었다. 500명 가량의 조직원들을 몇 개 섹터로 나눠 돌아가면서 함께 술을 마셨고, ‘형님-동생’이라는 관계지향적인 노무관리 스타일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 비싼 술집과 여흥을 제공하면서 ‘거절 할 수 없는 부탁’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부채감을 이용해 표밭을 다졌다. 2년차, 선배들이 가지고 있던 ‘노하우’를 활용하면서 고군분투 했던 양대 선거, A는 대의원 100%를 회사가 미는 후보로 당선시키고 위원장 선거에서도 회사가 미는 후보가 당선되는 쾌거를 맛본다. A가 맡은 구역의 성과로 그는 높은 고과를 받게 된다. 그는 아이들 학용품 대신 술잔을 잡고 O 바닥을 헤매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조선소는 무파업 교섭타결을 언론에 홍보했다. 쟁의로 인한 생산 일정 손실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D사는 H사의 ‘무지막지함’이나 S사의 ‘감정적 압박’을 활용하는 대신 ‘형님-동생’이라는 관계를 확장시켜, 서로 외면하지 못하게 마음쓰게 만드는 방식의 노무관리를 정착시켰다. 편의를 봐주고 챙겨주며, 술을 사주는 관계로 회사와 노동조합의 적대적 관계를 약하게 만들어 ‘협조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킨 결과가 무분규 교섭타결이었다.

그 대가는 컸다. 반장-직장-파트장-부서장-담당임원으로 이어지는 공식적 경로는 무시됐고 모든 이슈에서 ‘소원수리’가 오면 대의원을 위시한 노동조합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됐다. 모든 소원수리를 들어 주는 바람에 노동조합 집행부 각각이 갖고 있었던 ‘정치적 입장’ 조차도 무력해졌다. ‘강성 정파’의 노동조합은 오히려 ‘조직 이기주의’에 대해서 거리를 둔다면서 회사와 보조를 맞추기도 했다. 워낙 기층 조직의 ‘이기심’이 노동자 전체의 이익마저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노무관리자들은 노동조합의 파업 가능성에 대해서 코웃음을 친다. 자신들이 무엇이든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술과 관계로 다져놓은 노무관리의 ‘성공’은, 간접직(생산지원직) 증가와 더불어 근로윤리를 썩게 해 회사의 밑둥을 흔들어 대고 있다.

  • 여담으로, A는 무리한 음주와 과로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져 반 년 치료를 받다가,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아 산업재해 판정을 받고 회사에 복직했다. 술과 담배 모두 끊었지만 건강을 찾으려면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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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없어 늙는 조선 도시(가설적 접근)

조형제, [산업과 도시] 서평

재벌들이 대학교와 산업을 어떻게 엮었는지 살펴보면 그들이 이끌던 산업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더불어 산업도시와 대학을 같이 살펴보면 도시가 어떠한 경로를 타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따져볼 수 있다.

1977년 학교법인 D학원이 설립됐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86년에는 포항제철에 의해 포항공과대학이 개교했다. 재계서열 5위 이내에 있던 D그룹의 학교법인 D학원은 수도권의 공터에 종합대학을 지었다. 포항공과대학은 제철소와 인접한 곳에 전문공학인 양성을 위한 대학을 지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최고 재벌집단이던 S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을 인수했고, 전자 라이벌인 L그룹 역시 최고의 공과대학을 가지고 있던 종합대학 재단을 인수했다. 포항공대는 국내 최고의 공과대학이 됐고, D학원의 A대학은 IMF 구제금융 사태를 거치면서 D그룹의 형세와 같이 서서히 몰락했다.

제철도시 포항과 조선도시 ㄱ시를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것이다. 제철업과 조선업, 어떤 산업이 더 오래된 산업일까? 인간이 배를 몬 시간이 철을 제련한 시간보다는 길겠지만, 철을 제련한 역사 역시 2000년을 넘는다. 제철업이나 조선업이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산업이다. 또한 둘 다 현재의 ‘최신 엔지니어링’을 자랑하는 산업이다. 제철업의 자동화시스템은 산업공학의 ‘최적화’가 모든 면에서 작동해야만 가능하고, 조선업 역시 리벳을 엮는 대신 강판을 용접하고 자동항법 시스템을 도입한 순간부터 기계공학과 전기공학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야 하는 산업임에 틀림 없다. 최근 조선업 부실을 초래 했던 해양 플랜트야말로 건설과 조선기술 모두를 포괄하는 거대한 엔지니어링의 영역에 속해있다.

가설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소를 지었던 재벌 그룹들은 조선업의 미래에 대해서 ‘첨단 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고 크게 생각하지 않아 보인다. 대학의 부재가 그것을 설명한다. 울산을 제외하면 조선공학과를 보유한 4년제 공과대학이 조선소를 끼고 있는 산업도시에 없다. 독일과 일본에서 기본설계 도면을 가져와 표준 선형으로 가공해 빠른 공법 적용으로 빨리 건조하여 빨리 인도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도 있다. 조립공장을 2교대 돌려 블록 공급 속도를 높이고, 선행의장 완성률을 높여 도크생산 부하를 줄이고, 도크 회전율을 높인다. 이어 안벽 공기를 단축하고 시운전을 빨리 진행해 인도를 앞당긴다. ‘속도’를 통해 진격하는 선박 생산. 거기에는 공법개발의 모토는 있었지만, 진중하게 랩실에서 실험하는 연구원들의 자리는 크지 않았다. ‘랩실 엔지니어lab engineer’들은 ‘작업장 엔지니어workplace engineer’의 자리를 오래고 차지하지 못했다. 물론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분기점으로 한 조선산업 호황기부터 많은 고학력 엔지니어가 조선업에 유입됐다. 하지만 그들은 종합대학에서 공학을 배웠을 뿐, 현업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현장에서 배웠던 것은 아니다. ‘축적의 시간’을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통해, 인턴십을 통해 채우려 했지만 그 간극을 온전히 채우기는 힘들었다. 수도권에 있는 ‘고학력’ 공대생들은 조선소를 자연스레 피했고, 지방에 있는 조선공학과는 높은 취업률로 학생들을 유치했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실제로 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높은’ 엔지니어링 기술을 공급하는 데 제한적이었다.

조직문화의 관점, 도시의 관점으로 살펴봐도 조선소가 위치한 도시에는 4년제 대학 또는 Postech과 같은 일류 공과대학이 필요했다.

ㄱ시의 도심을 형성하는 ㄱㅎ과 ㅇㅍ, ㅇㅈ동을 보면 가장 많은 상점은 술집과 음식점, 아웃도어 매장이다. 평균 연령 40대 가량의 기혼자를 타겟으로 하는 시장이다. 퇴근해서 회식을 통해 술을 마시고 주말에는 등산과 낚시 등 아웃도어를 즐기는 기혼자의 도시. 대학을 졸업해 27세에 입사해 29세에 결혼하는 남성이 주류인 도시. 아이를 키우고 ‘가족적’ 분위기의 ‘씨족(clan)’ 조직문화 속에서 특별한 학습 없이 곧바로 지적 능력의 노화가 시작한다. 특별히 공을 들여 ‘배우지’ 않아도 되는 도시.부단히 노력하는 ‘장인’의 모습은 있지만, 부단히 ‘실험’하고 ‘토론’하고 뭔가를 ‘읽는’ 연구원의 모습이 산업 안에 없다. 그게 조선소 도시를 병들게 했다. 외부 부산이나 진주, 창원 등으로 공부하러 나가는 직원들이 제한적으로 있지만 실시간으로 지식을 교류해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인프라는 부재했다. 생산직들과 사무직 엔지니어 공히 ‘인지적 잠금cognitive lock-in’ 속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습득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매번 미디어를 통해 ‘문 닫은 술집’, ‘황량한 ~거리’를 통해 경기침체를 재현하는 이유도 사실은 조선업 하면 ‘술’과 ‘유흥’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1,1,9운동’을 규탄하는 게 가능한 것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전형적인 나쁜 보도. 산업 도시에 살면 유흥주점에서 술이나 마셔야 한다는 편견의 전형적인 예)

당연히 이 도시 안에 ‘젊은이’의 공간은 없다. ‘다양한 감각’의 술집 역시 들어설 여지가 없다. 삼사오오 모여 기성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끌어내고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회식으로 대표되는 유흥 소비는 있지만, 같은 ‘공학도’들의 도시이면서도 실리콘 밸리 같은 ‘창업’의 열풍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산업이 기울었을 때 우수한 역량을  다시 재투자할 수 있는 인력은 있으나, 대학이라는 ‘창조적 파괴’를 추동 하는 매개가 없기 때문이다. K문고, Y문고, B서점 등이 없지만 서점의 유효수요는 창출되지 않는다.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도시는 조로하고 만다. 조선업과 해양산업이 망하고 나서 엔지니어를 지킬 수 있는 ‘미래’가 없다. 가장 슬픈 점이다.

참조로 물론 젊은이를 조로하게 만드는 소비도시의 특성이 가부장적이며, 여성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공간인 것도 분명하다. 작업복을 입고 동일성의 권력을 통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도시가 주는 감각은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경기침체로 술집 골목에 사람이 줄어 도시가 얌전해져서 좋다고 냉소적인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D조선소가 위치한 동네는 우연찮게 A대학의 이름과 같은 A동이다. 그 이름을 따다가 괜히 수도권에 지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좀 더 젊은 도시, 그리고 창조적 파괴가 나올 수 있는 도시, 조선업 이후가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류 공과대학교가 있어야 했다. 해양플랜트 수주 ‘잭팟’이 터지던 그 때 지자체와 정부는 H대학교 분교를 세우겠다고 정책을 내밀었었다. 하지만 배는 이미 출항한지 오래다. 이젠 더 이상 젊은 고급 엔지니어는 조선소가 있는 산업도시를 먼저 찾지 않는다. 딸들은 애저녁에 대학을 마치고 이 도시에 오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제는 조선소 엔지니어의 아들들도 박봉을 받으면서 마초적인 이 도시에서 일하진 않으려 한다. 누군가는 일본의 전철을 말하지만, 그 전철은 어쩌면 훨씬 우아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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